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수헤일 알 하산 (문단 편집) ==== 2015년 ==== * '''2015년 북서부 대공세 (2015년 4월 ~ 6월)''' :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 지방의 대부분은 반군에 점령된 상태였으나 이들리브, 아리하, 지슈르 앗슈구르의 세 도시를 잇는 M4 고속도로 축선만큼은 강력한 방어로 유지되고 있었다. 이 세 도시를 점령하고, 주둔한 정부군을 포위 섬멸하기 위해 알 카에다 소속 알 누스라 전선과 자유 시리아군 일부 조직, 이슬람 전선 소속의 아흐라르 알 샴을 비롯한 여러 반군 집단들이 그간의 반목을 접어두고 사상 최대의 반군 연합체 '''"정복의 군대"'''(Jaish al-Fatah)를 결성하였고, 2015년 3월 28일 이들리브에 대한 전면 대공세에 돌입하였다. [[https://media.almasdarnews.com/wp-content/uploads/2015/03/CBMWbTXWEAAqSkX_jpg-large.jpg|3월 28일 전황도]]. 대공세를 견디지 못한 시리아군은 이들리브 시가지를 내준 후 후방의 아리하로 철수하였고, 시리아 전역에서 가용병력을 총동원, 5000여 명의 병력을 동원하였고, 타이거 부대도 4월 4일 아리하에 출진하여 아리하 시 북쪽 알 마스투마 육군기지에 가해진 반군의 공세를 격퇴하고 최대 450명의 반군 사상자를 강요하며 이들리브 수복 작전에 돌입하였다. 타이거 부대는 공세의 선봉에 서서 4월 8일에는 콰미나스(Qameenas), 화일란(Faylan)을 비롯한 이들리브로 향하는 국도 주변부의 마을로 진입했고, 4월 12일에는 콰미나스 마을을 점령하며 반군의 방어선을 붕괴시키고 순조롭게 진격하고 있었다. 공군 정보국은 방어선 붕괴로 당황하는 정복의 군대 지휘관들의 무선을 감청해냈고, 전역에서 51차례의 공습을 가하며 반군을 강하게 몰아붙였다. 18일에는 마스투마 육군기지 서쪽의 무콰블라(Muqablah) 마을을 점령하고 20일에는 자히르 알 무스후라끄 언덕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정복의 군대는 파죽지세로 이어지는 타이거 부대와 정부군의 기세를 꺾기 위해 정면 대응이 아니라 후방에 대한 공세를 택했다. 바로 2015년 북서부 대공세라 불리는 작전으로 정부군의 보급로인 M4 고속도로를 차단하기 위한 작전이었으며, 이를 위해 알 가브 평야지대와 소도시 지슈르 앗 슈구르를 점령하는 것이었다. 4월 22일 지슈르 앗슈구르 북부 검문소와 콰미드 벽돌 공장에 돌입한 자살폭탄차량과 함께 대전투가 개시되었다. [[https://media.almasdarnews.com/wp-content/uploads/2015/04/CDYJghDW0AAWFJ2.jpg|4월 24일 전황도]]. 4월 23일 알카에다 소속 알 누스라 전선은 15명의 자살폭탄병을 투입하며 남동쪽의 설탕 공장과 검문소 전역에 강공을 가했으며, 24일에는 지슈르 앗슈구르 시내 감제에 성공했고 자살폭탄차량을 잇따라 보내면서 4월 25일에는 지슈르 앗슈구르 시내를 완전 통제, 정부군 병력들은 시내의 국립 병원으로 후퇴했고 포위당했다. M4 고속도로는 정복의 군대에 의해 여러 마을이 점령되고 [[BGM-71 TOW|TOW]] 미사일에 의한 화력통제하에 놓이면서 사실상 M4 고속도로는 절단당했다. 여기에 정복의 군대가 아리하, 마스투마 지역에도 대공세를 가해오면서 정부군은 '''사실상 포위되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정부군이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가운데, 타이거 부대는 퇴로 확보를 위해 지슈르 앗슈구르 시내 재탈환 작전에 투입되었다. 5월 7일 지슈르 앗 슈구르 설탕 공장을 재탈환했고, 5월 10일에는 포위된 국립 병원을 향해 진격했다. 알 카에다 소속 알 누스라 전선은 자살폭탄차량을 투입하고 대공세를 가하면서 병원의 정부군을 박살내기 위해 공세를 가했으나, 타이거 부대와 교전하면서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 그러나 5월 12일부터 마스토마, 아리하로 대규모의 정복의 군대가 출진하면서 7일간의 격전 끝에 5월 19일 정부군의 상태는 크게 악화되었고, 지하드 반군 조직인 "아흐라르 알 샴"은 정부군이 아리하에서 퇴각을 시작했다고 발표하였다. 결국 5월 28일 정복의 군대는 아리하에 총공세를 감행하였고 정부군은 필사의 탈출을 감행한다. 타이거 부대는 이 대패 속에서 퇴로인 M4 고속도로의 확보를 위해 지슈르 앗슈구르 설탕 공장과 시내를 확보하기 위해 쉴 새 없는 격전을 벌였고, 특히 국립 병원에 포위된 정부군을 구원하기 위해 발악을 했지만 정복의 군대의 뛰어난 작전 지휘, 심각하게 부족했던 탄약, 미국제 TOW 미사일, 그리고 전체적으로 무너져가는 전선이라는 악영향 속에서 한계를 맞이했다. 결국 타이거 부대는 800여 명의 부상자를 내고 [[https://youtu.be/6JgR_kpwvCM|국방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탄약을 요청했음]]에도 보급을 받지 못했다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정부군과 함께 탈출하였고, 국립 병원의 정부군 200여 명도 최후의 엄호 속에 탈출했다. 하지만 80여 명만이 타이거 부대에 합류하였고, 120여 명은 근처 가옥이나 숲에 숨어있다가 반군에 잡혀 처형당하는 최후를 맞이했다. 6월 13일에는 타이거 대령의 경호원 중 한 명이 반군의 저격에 사살당했고, 주변인의 증언에 의하면 "타이거 대령은 전례 없이 동요하고 있었다". [[http://zairai.egloos.com/5911333|2015년 이들리브 대패 다이제스트 1. 2차 이들리브 전투]] [[http://zairai.egloos.com/5911359|2015년 이들리브 대패 다이제스트 2. 이들리브 재수복 전투]] [[http://zairai.egloos.com/5911402|2015년 이들리브 대패 다이제스트 3. 북서부 대공세와 정부군 참패]] 타이거 대령의 커리어에서 최대의 패배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일 뿐만 아니라, 시리아 정부군이 가까스로 유지하던 세력 균형이 무너진 대사건으로, 이 여파로 인해 라타키아 북부까지 정복의 군대에게 점령당했다. 정복의 군대는 전과 확대를 위해 지슈르 앗슈구르 남부 알 가브 지방에 대한 공세를 7월부터 8월까지 가했으나 정부군의 반격에 공세가 돈좌되었다. 타이거 부대는 7월 방어전 및 반격에만 참여하였고, 8월 반군 역습 때에는 철수하여 휴식에 들어갔다. 타이거 부대는 이 때의 피해로 기간 병력들이 상당부분 상실되었고, 정규 군대의 경보병 여단으로써의 정체성은 이 때를 기점으로 사라지게 된다. 2014년부터 휘하에 민병대들을 영입해서 지휘해 사용해왔으나, 4기갑사단과 콸라문 방패 부대와의 관계처럼 정규군-보조군의 관계였다. 이 때 기간 병력을 상당부분 잃어버리고 이후로는 타이거 부대 장교진이 정예 민병대들을 지휘하는 형태로 바뀐다. 2018년 현재 지휘부는 정규군 장교들이지만, 전투병력은 1000명의 기간병력을 제외하면 죄다 민병대라는 기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 * '''쿠웨이르 군사공항 구출 작전 (2015년 9월 ~ 11월)''' : 알레포 동부 쿠웨이르 군사공항은 공군학교를 포함한 주요 기지였으나, 2012년 반군에게 포위된 이후 항공 보급만을 받으며 3년을 버텨 왔다. 이란 혁명수비대를 비롯해 정부군과 지원 세력이 쿠웨이르 군사공항의 구원 계획을 여러 차례 입안하였으나 가용전력의 부족으로 실행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러시아의 참전으로 공군 전력이 크게 향상되었고, 더불어 이들리브 참패로 나빠진 분위기를 일신하고자 쿠웨이르 군사공항 구원 작전이 입안되었다. 한편 이들리브 전투의 패배를 추스르고 3개월간 정비한 타이거 대령과 그의 부대는 이란 혁명수비대와 국가방위대[* NDF, 친 아사드 민병대.], [[바트당]] 여단과 러시아 항공우주군의 보조를 받아 선봉으로써 쿠웨이르 군사공항 구원 작전에 임하게 되었다. 9월 22일 시리아 공군의 공습으로 시작된 작전은 IS의 반격에도 불구하고 순조로운 진행을 보여 10월 내내 주변 마을과 소도시를 점령하면서 10월 21에는 쿠웨이르 군사공항에서 4km 떨어진 지점까지 전진하였고, 11월 10일 밤에는 시리아 국영방송 기자들이 쿠웨이르 군사공항에서 전격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3년동안 포위된 쿠웨이르 군사공항을 해방시켰다. 300여 명의 잔존병력이 저항하던 쿠웨이르 군사공항의 장병의 대다수가 긴급한 의료 지원을 필요로 하는 수준이었다고 하며, 이들은 임무 교대되어 안전한 라타키아 지방으로 이송되었다. 시리아 정부는 이 전과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 패배 분위기를 불식시켰고, 러시아의 참전으로 인하여 승리의 앞날만이 있다는 이미지를 주는 데에 성공하였다. 또 이 전투의 주역인 타이거 대령에게는 소장 진급 명령을 하달함으로써 마침내 수헤일 알 하산은 만년 대령에서 소장으로 진급하게 되었다. ---- * '''알레포 동부 공세 (2015년 12월 ~ 2016년 2월)''' : 쿠웨이르 군사공항 해방을 완료한 타이거 부대, 사막의 매 부대, 바트당 여단, 이란 혁명수비대는 계속해서 군사공항 주변의 마을들을 장악하면서 군사공항의 안전을 꾀했다. 알 바브(al Bab) 시가지를 비롯한 [[알레포]] 동부의 여러 도시를 탈환하는 가운데 알레포 시가지의 공업도시 셰이크 나자르에 주둔한 시리아 정부군이 동쪽으로 전진을 개시하면서 타이거 부대 또한 열병합 발전소가 위치한 지역을 포위하기 위해 기동하였고, IS 군대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반격을 시도하였으나 타이거 부대의 전진을 막지 못하고 패퇴했다. 2월 3일 타이거 부대는 셰이크 나자르와 13km 떨어진 지점까지 진군하였고, IS가 주둔한 타이바흐(Tayyibah) 마을로 돌입하여 격전을 벌여 IS 주력이 탈출을 시작하였다. 2월 7일에는 셰이크 나자르에서 7km 떨어진 지점까지 진군, IS는 열병합 발전소 지점의 포위망에 갇히기 시작했으며 이를 뚫기 위한 반격을 개시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마침내 2월 20일에는 타이거 부대가 열병합 발전소를 완전 통제하는 데 성공, 2월 21일에는 IS가 모든 지역을 빼앗기고 무질서하게 탈주하다가 포로로 잡혔다. 쿠웨이르 구원에서 알레포 동부 공세로 이어지는 작전을 통해 정부군은 알레포 동부의 영토를 다시 빼앗을 수 있었고, 러시아 참전과 더불어 정부군 대반격 성공을 과시할 수 있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